오바댜(9)
3.3. 이쯤에서 교만(驕慢, arrogance)의 설명을 라이프성경사전을 통해 알아봅시다. 잘난 체하며 겸손하지 않고 방자히 행하며, 능력을 과시하며 자기를 최고로 자랑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에서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부인하는 최고의 범죄 행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시 18:27; 잠 29:23; 렘 50:31). 오만(傲慢), 거만(倨慢)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교만하다가 실패한 자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①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방해한 바로(출 5:2), ② 에스더(Esther) 당시 유다 민족을 전멸시키려 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 하만(Haman, 에 3:5) ③ 신(神)으로 자처하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군대에게 멸망당한 두로 왕(겔 28:2-9), ④ 이스라엘 멸망을 기뻐하며 자만하다 멸망한 모압인(Moabites, 렘 48:29), ⑤ 자신이 건설한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다 정신 질환에 걸려 짐승처럼 행세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단 4:30), 그리고 ⑥ 성전 기물로 유흥을 베풀면서 자신을 높이다 나라를 잃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Belshazzar, 단 5:23) 등이 있습니다.
"All Is Vanity" by C. Allan Gilbert, evoking the inevitable decay of life and beauty toward death
교만에 관해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교만의 반대말이 ‘겸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먼저 겸손(謙遜, humility)을 볼까요? 자신(마음)을 낮추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높이는 욕심 없는 마음 상태입니다. 겸손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요구되는 신앙 덕목입니다(신 8:2; 대하 7:14). …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가장 대표적인 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사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빌 2:5-8).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溫柔, gentleness)는 무엇일까요? 역시 라이프성경사전의 도움을 받습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행동이 친절한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는 자세, 곧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여기며 주께 순종하는 자세로 이웃을 대하는 마음가짐, 혹은 고통이나 억울함 심지어 굴욕 속에도 내면적으로 부드러운 심령을 견지하고 겸손히 참아내는 고상한 인격을 뜻합니다(민 12:3; 시 25:9).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로 묘사하며(갈 5: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닌 품성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마 11:29; 고후 10:1).
우리의 삶이 또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겸손(또는 온유)한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혹시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또는 ‘겸손을 가장한 비굴함’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아는 분이 이런 표현을 하기 전까지 저는 몰랐는데, 그의 고백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몸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어서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마음 속에 교만과 건방짐이 가득 차 있는 경우를 많이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자, 봐. 나 이런 사람이야. 얼마나 겸손해? 너희들 이만큼 겸손할 수 있어?”라고 말입니다. 실제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면서도 겸손한 체하며 “저는 그 일 못해요. 능력이 안 되거든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형제님은 참 겸손하시군요. 은혜가 됩니다.”라고 칭찬하면, “뭘요, 다른 분들도 다 그렇게 하십니다.”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다 못해 비굴함이 느껴질 정도로 겸손을 떠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 경우도 허다합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겸손합니까? 아니면, 겸손을 가장해서 또 다른 교만이나 건방짐을 표시합니까? 정말 겸손합니까? 아니면, 겸손을 가장해서 비굴함을 보입니까?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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