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인트로)
<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오바댜 (OBADIAH) >
위승섭
교회에 좀 다녀보신 분들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호세아서(Hosea)부터 말라기서(Malachi)까지의 예언서인 소선지서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소선지자들이라고 해서 덜 중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사야(Isaiah), 예레미야(Jeremiah), 에스겔(Ezekiel), 다니엘(Daniel) 등의 대선지서에 비하면 분량이 짧습니다. 그래서 소선지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 소선지서들 중에 목사님들이나 부흥강사들이 인용하는 구절도 있습니다만, 설교말씀의 주제로 들어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많이 들어본 유명한(?) 구절들이 있지만 말이죠. 그래서 소선지서를 한 번 읽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바댜서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가장 짧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성경으로는 개역개정과 새번역, 그리고 공동번역을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영역본으로는 ESV(English Standard Version), KJV(King James Version), NASB(New American Standard Bible),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NLT(New Living Translation), The Message 등의 각주와 관주를 참고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선지자에 대해 라이프성경사전의 설명을 먼저 보겠습니다.
선지자(先知者, prophet)라는 낱말은 ‘먼저,’ ‘앞,’ 또는 ‘미리’라는 뜻의 pro와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phetes가 결합된 낱말입니다. 선지자는 앞의 일을 내다보고 예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전하는 대언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주로 꿈이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받았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실제적인 말씀을 공포(선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직무에는 예언(豫言)과 선견(先見)의 두 단면이 있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백성에게 예언하는 것과 이상이나 신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견자(seer)의 역할로 나뉘었습니다(왕하 17:13). 또 선지자 밑에서 배우던 선지 학교의 생도들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거의 실체를 알 수는 없습니다(삼상 19:19-20; 왕하 2:3-5; 4:38; 6:1). 한편 시대를 막론하고 거짓 선지자들도 많아서 언제나 경계가 요구되었습니다(렘 28:1).
모세(Moses)를 탁월한 선지자로 보나(신 18:18), 선지자 직분은 사무엘(Samuel)에서부터 실제적으로 시작된다고 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왕국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이사야(Isaiah), 예레미야(Jeremiah), 에스겔(Ezekiel), 다니엘(Daniel)의 대선지자와 열두 명의 소선지자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언의 특징과 형태, 사역을 볼 때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은 사명을 감당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 아가보(Agabus),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John) 등이 그에 해당합니다. 물론 선지자 중의 참 선지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초대 교회 이후 교회에서 선지자 직책은 사라졌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대언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말을 옮겨본 적이 있습니까? 대언자(代言者, advocate) 말입니다. 저는 필리핀 목사님의 설교를 통역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통역해 본 적도 있습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통역을 배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집회에서 통역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통역자는 강사의 말을 그대로 옮겨야 합니다. 강사가 목소리를 높이면 통역자도 높이고, 강사가 팔을 들면 통역자도 팔을 들어야 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선지자들 중에서 세례 요한의 한마디가 선지자의 임무의 정수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 3:30)
God appearing to Obadiah in his dream (France, 13th century).
이렇게 ‘하나님 또는 여호와의 말씀이 누구누구에게 임하니라.’라는 구절은 모든 선지자에게 공통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죠? 대부분의 하나님의 말씀은, 즉 선지자가 대신 전하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과 징벌의 내용이 많습니다. 물론 심판과 징벌 후에 회복과 소망에 대한 하나님의 애틋한 말씀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성이 악한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징계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멀어지려는 악한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그래서 선지자는 그 심판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해야만 하는 선지자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선지자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전할 선지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불순종한 선지자의 대명사인 요나(Jonah)처럼 적국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필설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창자가 끊어지는 느낌일 겁니다. 오죽하면 예레미야의 별명이 눈물의 선지자(weeping prophet)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면, 공동체가 겪어야 할 엄청난 심판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 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공동체의 회심을 통해 그 뜻을 돌이키신다고 하면, 선지자의 선포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래저래 선지자는 이중의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입니다. 공동체의 운명을 생각하면 애가 끊어지는 슬픔이 밀려오고, 자신의 선포가 성취되지 않으면 자신이 겪어야 할 수모와 수치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럼 평범하다 못해 아주 부족한 한 크리스천과 함께 오바댜서를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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