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13)
5.2. 예레미야서에서 같은 내용의 구절을 읽어보고 다시 오바댜서로 돌아갑니다.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둑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렘 49:9-10)
에돔의 경우는 달랐던 모양입니다. 5절 마지막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 부분이 5절 마지막에 있지만 영어성경에는 도둑과 강도를 언급한 다음에 있습니다. 포도를 언급하기 전에 있다는 말이지요. 그건 그렇고, 에돔을 침략하는 자들은 정말 도둑같이 그리고 강도같이 밤에 와서 모든 것을 수탈해 갑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에돔 족속은 천혜의 요새인 페트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적들이 이 페트라를 침공하려면 밤에 몰래 침공하는 것이 그나마 괜찮은 작전이었을 겁니다. 역시 악의 세력은(물론 에돔도 악하지만) 빛이 없는 밤에 활동하는군요. 낮엔 에돔 족속들이 눈에 불을 켜고 방어할 겁니다. 그러나 밤에는 자기들이 기거하는 산성을 믿고 방비를 좀 허술하게 하기도 하겠지요. 에돔의 마지막은 수탈 그리고 그들이 감춘 보물은 모조리 빼앗길 것입니다. 그렇게 기고만장하고, 그렇게 교만하고, 그렇게 건방지며, 그렇게 자신 있어 하던 에돔이 수탈당하고 모든 보물을 빼앗기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아무래도 교만과 겸손에 관한 구절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구절들이지만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가 쓸 수 없음 같이 되리라.” (렘 13:9-1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허리띠를 유브라데에 가지고 가서 바위틈에 감추게 하십니다. 여러 날 후 그 허리띠를 다시 가져오게 하시는데 그 띠가 그만 썩어버렸습니다. 그 띠를 소재로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교만을 책망하십니다. 이 구절에 교만의 정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는 것, 완악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 우상을 섬기는 것 등입니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시 18:27)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 18:12)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 29:23)
교만한 사람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금방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교만은 겉으로 잘 드러나는 모양입니다. 마음이 겸손하면…. 하지만 겸손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 22:4)
겸손을 가장 간단하게 정의한 구절 같습니다. 하기야 교만하고 건방진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시 22:26)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습 2:3)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잠 3:34)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바댜 6절의 말씀이 에돔을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군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도 겸손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Engraving of the Prophet Micah by Gustave Doré.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이 외에도 교만과 겸손에 관한 구절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번 해보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라는 사람을 아시지요? 백성을 사랑하고 인의를 행하며 덕을 베푸는 사람으로 일컬어집니다. 유비가 처음으로 모사를 얻었습니다. 서서라는 뛰어난 지략가입니다. 제갈공명은 서서가 유비를 어쩔 수 없이 떠나고 난 후에 그 유명한 삼고초려로 얻은 지략가입니다. 하여간 이 서서가 유비에게 “주공, 주공께서는 인의로 백성들을 돌보시며 덕으로 통치하십니다. 그 마음 변치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유비는 “선생, 나는 그것조차도 잊으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인의와 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겸손한 사람인 그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백성을 사랑하는 유비였습니다. 오히려 서서가 더 놀라며 유비를 더 존경하며 유비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그런 서서의 마음 한 구석에는 유비에게 대한 존경감과 두려운 마음이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유비의 대답을 들은 서서는 속으로 ‘주공은 정말 놀랍다. 그 사실조차 잊어버린다니. 나의 주공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답니다. 무섭다는 표현이 어색합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말로 해 볼까요? ‘경외’입니다. 하여간, 그래서 유비가 천하의 삼분의 일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겸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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