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14)
너와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여 이기며,
네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에 함정을 파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옵 7)
7.1. 에돔과 약조한 자들이 누구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제외한 주변 모든 나라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출애굽할 당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적대시한 주변의 모든 나라들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나라들과 에돔 족속은 약조를 맺습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에돔의 옛 친구들이 에돔을 가장자리로 몰아냅니다. 에돔의 오랜 친구들이 에돔의 면전에서 거짓말을 합니다.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기던 친구들이 에돔의 등에 칼을 꽂습니다. 사람의 약조가 이렇습니다. 물론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만, 워낙 사탄의 세력이 크니까 방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천하에 나 홀로 있는 것만 같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나를 대적하고 나를 쓰러지게 하는 것 말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작당을 해서 나를 넘어뜨리고 쓰러지게 합니다. 나는 혼자인데 상대의 수는 엄청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엘리야입니다. 그 악명 높은 아합왕 시대에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엘리야 선지자 말입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엘리야]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왕상 18:22)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같은 마음, 같은 말,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열매를 맺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충성스럽고 신실한 동역자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먼저 충성스러운 동역자가 되어야 하고, 또 그런 신실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 또는 통찰력도 지녀야 하겠지요.
7.2. 어쨌거나, 오바댜는 에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에돔과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에돔을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합니다. 어제까지 에돔과 동맹을 맺은 자들이 오히려 에돔을 배반하고 에돔을 쫓아냅니다. 에돔과 화목하던 자들이 에돔을 속여 이깁니다. 어제까지 에돔과 화친조약을 맺었던 자들이 에돔을 속여 오히려 에돔을 이깁니다. 에돔의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에돔 아래에 함정을 팝니다. 에돔의 부와 재물로 살아가던 자들이 오히려 에돔을 배반하고 에돔을 멸망시킬 구덩이를 파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의 약조는 깨어지기 마련입니다. 어제까지의 동지가 오늘에 적이 되고, 어제까지의 동지가 오늘에 적이 되는 세상입니다.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년만년 함께 동맹관계로 잘 살아가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조했지만,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등을 돌리는 것이 국제관계입니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변치말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 찍고 손등으로 복사까지 하더라도 돌아서서는 바로 배반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과연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삼국지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진궁이란 자와 고향으로 도망가는 도중에 친척 여백사의 집에 잠시 머무릅니다. 여백사가 집안사람들에게 돼지를 잡고 후히 대접하라고 일러놓고 본인은 술을 사러 마을로 갑니다. 하지만 집안사람들이 돼지 잡는 것을 자기를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한 조조와 진궁은 칼을 빼들고 집안사람들 모두 죽입니다. 나중에 부엌 한편에서 묶인 채로 바동거리는 돼지를 보고 아연실색하며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사서 돌아오는 여백사마저 죽입니다. 그리고 조조의 명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천하를 배반할지언정 천하가 나를 배반하게 만들지는 않겠다.”라고 말입니다. 배반하고 배반당하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상대방을 배반하지 않고는 일어설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람을 배반합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람 아래에서 함정을 팝니다.
이것이 나 자신입니다. 나는 원래 배반의 달인입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따먹은 것부터 배반입니다. 그 배반의 피가 우리 몸에 흐르고 있습니다. 너무 과한 말인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최소한 저의 경우를 보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 자체로 사실입니다.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성경에는 베드로만 나와 있지만, 만약 지금 성경이 써지는 시대라면 나의 이름이 숱하게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천국 교실의 칠판 한쪽 구석에 이렇게 써질지도 모릅니다. ‘어제 배반한 사람, ○○○…’ ‘어제 배반하고 오늘 또 배반한 사람, ○○○…’ 심지어 ‘내일 또다시 배반할 사람, ○○○…’ 이렇게 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배반하지 않으시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배반하는 우리를, 나를 품어주십니다. 이런 얘기 자주 들으셨을 겁니다. 내가 예수님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손을 잡고 간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절벽에서 떨어지려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하는 영화의 장면들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연출가는 위에서 힘겹게 끌어당기는 주인공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동료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손목을 잡는 것 말입니다. 저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 감독의 상상력을 높이 삽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상상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그 못자국 난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못자국 난 그 손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손으로 우리의 손목을 잡고 가십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나의 죄성은 언제든지 예수님의 손을 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조차 아시고 나의 손목을 잡고 가십니다. 나의 손을 잡는 것으로 부족해서 나의 손목을 잡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논리―논리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로 배반의 반대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충성’ 또는 ‘정직’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왕 생각난 김에 한 번 ‘충성’과 ‘정직’에 대한 구절을 찾아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0)
우리 목사님께서 양육과정에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양육과정에는 여러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는 과제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정리해서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독후감을 쓰는 작은 것을 충성스럽게 하지 못하는 데, 어찌 더 큰 일을 맡을 수 있는가?”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작은 것이라고 경히 여기지 않고, 큰 일이라고 놀라지 말고, 맡은 일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 내십시다. 하는 흉내라도 내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잠 25:1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 1:12)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갈렙]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수 14:9)
충성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에 7:9)
충성스러운 부하는 어떤 모함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여기서 에스더서를 다루지는 않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에스더(Esther)의 삼촌이자 후견인인 이 모르드개(Mordecai)를 좋아합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하는 모르드개입니다. 상황이 어떻든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묵묵히 지키는 모르드개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저 자기가 맡은 일을 우직하다고 할 정도로 묵묵히 합니다.
저는 사극을 좋아합니다.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해서 어느 정도 허구가 들어가지만, 기본 골격은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방송됩니다. 많은 경우 왕 또는 주군이 등장하고 그 왕과 주군에 절대 충성하는 신하들이 나옵니다. 왕이 죽으라면 신하들은 죽습니다. 왕이 명령을 내리면, 충신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 명령을 수행합니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말이죠. 주군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습니다. 나는 어떨까요? 아...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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