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15)


7.3. 충성과 짝이 될만한 덕목이 정직이지 싶습니다. 몇 구절을 찾아봅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사 26:7)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21:2)

개역개정에는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신다.’라고 좀 어려운 말이 사용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야훼께서는 그 마음을 헤아리신다.’라고 기록합니다. 새번역은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라고 기록합니다. KJV은 ‘그 마음을 숙고하신다(곰곰이 생각하신다, ponder).’라고 기록합니다. NLT는 ‘그 마음을 조사하신다(시험을 실시하신다, examine).’라고 기록합니다. Message는 한 술 더 떠서 ‘우리의 동기를 조사하신다(examines our motives).’라고 기록합니다. 다른 영역본들은 ‘마음의 무게를 달아 저울질 하신다(weigh).’라고 기록합니다. 사람의 속내를 헤아려 보신다(잠 24:12)는 말이겠지요. 

저는 하나님께서 감찰하시든, 헤아리시든, 꿰뚫어 보시든, 숙고하시든, 조사하시든, 검사하시든, 시험을 치시시든, 저울질하시든, 그 모든 것이 나를 얽매고 꼼짝달싹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인공위성을 사용한 GPS로 나의 모든 행동반경을 감시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골목마다 있는 CCTV로 나의 모든 행동과 마음의 동기까지 감시하며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도 당당하게 하늘을 보고 걷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걷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하나님, 용서하소서. 아직도 그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벌을 받기 싫어서, 아니 두려워서 착한 척, 의로운(?) 척하는 행태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니 위선이, 가짜의 선이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고 싶지만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인공위성이나 CCTV가 나를 보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감시의 역할도 하지만, GPS가 나를 안전한 곳으로 안전한 방법으로 이끌며, CCTV가 어떤 일이 일어난 후에라도 나를 변호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역할이지만, 그런 생각을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속으로 나직히 말해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0) 내 속에 정한(pure)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니 내 속에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시라고 탄원합니다. 내 안에 정직한 영이 없습니다. 그러니 내 안에 정직한(변함 없는, steadfast) 영을 새롭게 하시라고 간청합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전 7:2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정직했습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이, 아니 나의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사도 바울이 인용하고(롬 1:17) 개혁가인 루터(Luther)가 무릎을 치고 깨달음을 얻었던 유명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유럽에서는 ‘개혁’이라는 용어만 사용한다고 하는군요. 그 개혁의 파장이 단순히 종교계에만 미친 것이 아니라 중세 유럽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아 새로운 사회로 들어가게 해서 ‘개혁’이라는 용어만 쓴답니다.) 충성가 정직, 그리고 그 최고봉은 믿음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럴 것 같습니다. 믿지 못하면 충성하지 못합니다. 믿으니까 충성하는 것입니다. 믿으니까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7.4. 오바댜는 에돔이 배반당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옵 7b) 이 부분을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니 다 비슷합니다. 분명한 것은 에돔이 배반당할 조짐조차 몰랐다는 겁니다. 왜 몰랐을까요? 보통(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배반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를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상대방을 대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대비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배반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차하면 먼저 배반합니다. 그런데 에돔은 몰랐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악한 일에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는 달인인데 왜 몰랐을까요? 저는 3절과 4절에 나타난 교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에돔의 건방짐이 에돔의 마음을 가렸습니다. 에돔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건방진 사람은 귀를 닫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눈을 낮추지 않습니다. 건방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오바댜서의 초반은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데, 중심에 있는 3절과 4절이 에돔의 교만과 건방짐, 즉, 방자함에 대한 고발입니다. 교만에 대한 저의 생각은 앞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 쓰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겸손을 가장한 교만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댓글

  1. 개혁.
    완전한 변화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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