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2)
1.6.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의 각주에 잠언 한 구절을 참고하라고 하는군요.
묵시(revelation, NIV; vision, NASB)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 29:18)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 즉 예언적 이상(vision)이 묵시입니다. 이 묵시(이상)가 없으면 사람은 방자히 행합니다. 좀 어려운 말인가요? 신중하지 않다(cast off restraint, NIV)는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Message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볼 수 없으면, 스스로 걸려 넘어진다(stumble).’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율법(wisdom’s instruction, NIV; law, NASB)에 주의를 기울이고(heed, NIV) 지키는(keep, NASB)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Message). 그러니 오바댜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나타내시는 것에 주의를 기울입시다.
Vision of Obadiah
1.7. 오바댜 선지자가 전하는 그 묵시(계시, 비전)는 에돔(Edom)에 관한 내용입니다. 야곱(Jacob)의 형 에서(Easu)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과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당시, 그들의 땅을 지나가게 해달라는 모세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민수기 20:14-20에 그 상황이 나타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에돔 영역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Kadesh)에 이르렀을 때,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냅니다.
청하건대 우리[이스라엘]에게 당신[에돔]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 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민 20:17)
천하의 모세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에돔 왕에게 부탁합니다. 그냥 길 따라 가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돔 족속은 야곱, 즉, 이스라엘과는 어찌되었든 형제이니까요. 그런데 에돔 왕은 거절합니다. 거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너[이스라엘]는 우리[에돔]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 (민 20:18)
참 고약한 형제입니다. 하기야 야곱과 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어머니 리브가(Rebekah)의 태에 있을 때부터 싸웠습니다(창 25:22). 야곱(이스라엘)과 에서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적대적인 관계였습니다. 참 고약한 운명―우리 믿는 이들이 이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입니다. 하여간, 에돔 왕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한 번 더 부탁합니다.
우리[이스라엘]가 큰 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에돔]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민 20:19)
천하의 모세답지 않게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합니다. 지나가게 하면 통행세도 내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에돔 왕의 대답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에돔 왕]는 이르되, “너[이스라엘]는 지나가지 못하리라.”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민 20:20-21)
이왕 시작한 김에 이스라엘과 에돔의 적대적인 관계를 더 살펴봅시다. 다윗(David)과 솔로몬(Solomon)의 시대에도 에돔은 딴죽을 걸었습니다(왕상 11:14-25). 이 본문을 다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요약인 왕상 11:25만은 적어보겠습니다.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Rezon)이 수리아(Aram; Syria)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왕상 11:25)
참으로 질기고 질긴 악연입니다. 하닷(Hadad)은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군대 지휘관 요압(Joab)이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을 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자입니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이집트로 망명한 후, 이스라엘에게 복수하러 귀국합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은 이스라엘에게 환난을 끼쳤습니다. 가장 번성하고 번영한 솔로몬의 시대에도 솔로몬이 살아있던 평생에 에돔의 후예인 하닷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 후에도 틈만 나면 에돔은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대하 20:22; 21:8).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청을 거절하는 에돔―마치 바로(Pharaoh)처럼―은 우리의 일평생 우리에게 딴죽을 겁니다. 만약 혼자서 감당할 수 없으면 주위 나라들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듯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대적합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평생에 걸쳐서 말입니다. 잊을 만하면 또 대적하고, 겨우 지나갔나 싶으면 또 나타나서 딴죽을 겁니다. 심지어 대를 이어 우리의 자손들을 대적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담(Adam)을 유혹한 악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으며 우리의 자손들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을 겁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우리를 미혹합니다(마 24:24; 막 13:22) 아니 실제로 우리를 공격하지요. 위에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아마 그 단어가 적절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그 운명을 깡그리 뒤집어엎은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모든 악을 단번에 정리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악을 단번에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당하게 선언하십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실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9:30). 그렇습니다. 우리의 대적이 아무리 우리에게 환난을 끼치더라도 결국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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