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17)

“드만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말미암아 에서의 산에 있는 사람은 다 죽임을 당하여 멸절되리라.” (옵 9) 9.1. 드만(Teman)? 좀 생소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 (창 36:9-11)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린 왕은 이러하니라.  브올의 아들 벨라니  그의 도성 이름은 딘하바이며,  벨라가 죽으매  보스라 세라의 아들 요밥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요밥이 죽으매  데만 종족의 땅의 사람 후삼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후삼이 죽으매  브닷의 아들 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 (대상 1:43-46) 에돔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즉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 (렘 49:20) 재미있는 것은 욥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 (욥 2:11) 이 엘리바스가 창세기 36:10의 엘리바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재앙을 당한 욥에게 여러차례 말합니다. (욥 4-5장; 15장; 22장) 하지만 그의 말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말도 욥의 말...

오바댜(16)

B. 에돔 멸망의 재확인(8-14) 1. 에돔의 수치와 멸망(8-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옵 8) 8.1. ‘그 날’이 언제일까요?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가 멸망당하고,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가 멸망당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독수리처럼 높은 산에 기거하고, 난공불락의 요새인 바위틈에 살고, 심지어 하늘의 별 사이에 살더라도, 하나님께서 끌어내리시는 날 말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같은 내용을 두 번 반복해서 기록한 것을 자주 만납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와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라는 같은 말씀이 두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확증입니다. 분명히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보통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심판이나 저주가 아닌 축복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은혜의 말씀이지요.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이지요. 감사한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도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축복의 말씀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면서도 심판의 말씀을 듣기는 꺼려하는 것 같습니다. 12월 31일 밤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새해에 주시는 말씀카드를 뽑습니다. 축복의 말씀카드를 뽑으면 얼굴이 환하게 펴지며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심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징계의 말씀이나 또는 마음에 부담을 갖게 하는 말씀을 뽑으면, 한숨을 내쉬며 카드를 빨리 숨깁니다.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축복의 말씀이나 징계의 말씀 모두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언약의 말씀입니다. 물론 저주, 심판, 징계 등의 낱말보다는 은혜, 축복 등의 낱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런 ...

오바댜(15)

7.3. 충성과 짝이 될만한 덕목이 정직이지 싶습니다. 몇 구절을 찾아봅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사 26:7)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21:2) 개역개정에는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신다.’라고 좀 어려운 말이 사용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야훼께서는 그 마음을 헤아리신다.’라고 기록합니다. 새번역은 ‘주님께서는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라고 기록합니다. KJV은 ‘그 마음을 숙고하신다(곰곰이 생각하신다, ponder).’라고 기록합니다. NLT는 ‘그 마음을 조사하신다(시험을 실시하신다, examine).’라고 기록합니다. Message는 한 술 더 떠서 ‘우리의 동기를 조사하신다(examines our motives).’라고 기록합니다. 다른 영역본들은 ‘마음의 무게를 달아 저울질 하신다(weigh).’라고 기록합니다. 사람의 속내를 헤아려 보신다(잠 24:12)는 말이겠지요.  저는 하나님께서 감찰하시든, 헤아리시든, 꿰뚫어 보시든, 숙고하시든, 조사하시든, 검사하시든, 시험을 치시시든, 저울질하시든, 그 모든 것이 나를 얽매고 꼼짝달싹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인공위성을 사용한 GPS로 나의 모든 행동반경을 감시하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골목마다 있는 CCTV로 나의 모든 행동과 마음의 동기까지 감시하며 저울질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도 당당하게 하늘을 보고 걷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걷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하나님, 용서하소서. 아직도 그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벌을 받기 싫어서, 아니 두려워서 착한 척, 의로운(?) 척하는 행태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니 위선이, 가짜의 선이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고 싶지만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인공위성이나 CCTV가 나를 보호할...

오바댜(14)

너와 약조한 모든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여 이기며,  네 먹을 것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에 함정을 파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옵 7) 7.1. 에돔과 약조한 자들이 누구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제외한 주변 모든 나라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출애굽할 당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적대시한 주변의 모든 나라들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나라들과 에돔 족속은 약조를 맺습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에돔의 옛 친구들이 에돔을 가장자리로 몰아냅니다. 에돔의 오랜 친구들이 에돔의 면전에서 거짓말을 합니다.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기던 친구들이 에돔의 등에 칼을 꽂습니다. 사람의 약조가 이렇습니다. 물론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만, 워낙 사탄의 세력이 크니까 방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천하에 나 홀로 있는 것만 같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나를 대적하고 나를 쓰러지게 하는 것 말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작당을 해서 나를 넘어뜨리고 쓰러지게 합니다. 나는 혼자인데 상대의 수는 엄청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엘리야입니다. 그 악명 높은 아합왕 시대에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엘리야 선지자 말입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엘리야]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왕상 18:22)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같은 마음, 같은 말,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열매를 맺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충성스럽고 신실한 동역자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이 먼저 충성스러운 동역자가 되어야 하고, 또 그런 신실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 또는 통찰력도 지녀야 하겠지요. 7.2. 어쨌거나, 오바댜는 에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바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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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예레미야서에서 같은 내용의 구절을 읽어보고 다시 오바댜서로 돌아갑니다.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둑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렘 49:9-10) 에돔의 경우는 달랐던 모양입니다. 5절 마지막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 부분이 5절 마지막에 있지만 영어성경에는 도둑과 강도를 언급한 다음에 있습니다. 포도를 언급하기 전에 있다는 말이지요. 그건 그렇고, 에돔을 침략하는 자들은 정말 도둑같이 그리고 강도같이 밤에 와서 모든 것을 수탈해 갑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에돔 족속은 천혜의 요새인 페트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적들이 이 페트라를 침공하려면 밤에 몰래 침공하는 것이 그나마 괜찮은 작전이었을 겁니다. 역시 악의 세력은(물론 에돔도 악하지만) 빛이 없는 밤에 활동하는군요. 낮엔 에돔 족속들이 눈에 불을 켜고 방어할 겁니다. 그러나 밤에는 자기들이 기거하는 산성을 믿고 방비를 좀 허술하게 하기도 하겠지요. 에돔의 마지막은 수탈 그리고 그들이 감춘 보물은 모조리 빼앗길 것입니다. 그렇게 기고만장하고, 그렇게 교만하고, 그렇게 건방지며, 그렇게 자신 있어 하던 에돔이 수탈당하고 모든 보물을 빼앗기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아무래도 교만과 겸손에 관한 구절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구절들이지만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교만을 이같이 썩...

오바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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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돔의 철저한 멸망(5-7) 혹시 도둑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만족할 만큼 훔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옵 5-6) 5.1. 동물의 세계를 찍은 다큐멘터리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더라도 배가 부르면 그만 둡니다. 아무리 포식자라 하더라도 먹을 만큼만 잡아먹고 그만 둡니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사자가 욕심을 부려서 더 잡아먹는 내용은 없습니다. “아, 내일을 위해서 더 잡아먹어야지. 아니야, 지금은 배가 부르니까 잡아먹지는 않겠지만, 내일을 위해서 다섯 마리를 미리 잡아두어야지.”라고 말하는 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잡아먹습니다. 그렇게 생태계가 유지되는 모양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지요.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강도사건이 일어난 뉴스를 보면 깡그리 다 훔쳐갑니다. 남김없이 다 훔쳐갑니다. 물건만 훔쳐가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마저 해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을 그렇게 묘사하셨겠습니까? 비단 도둑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욕심을 부려서 더 먹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불러 죽겠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이 먹고 욕심을 부리면 배가 불러서 죽을까요? 고대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아실 겁니다. 먹을 것이 남아돌았던 그 당시에 귀족들은 먹고, 토하고, 또 먹고, 또 토하고, 먹고, 또 토하고…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조차 ...

오바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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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옵 4) Eastern imperial eagle – in Israel 4.1. 인간은 높은 산성에 몸을 숨기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건방지게 되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대답을 보십시오.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 별 사이에 둥지(실제로 영역본에서는 ‘둥지’를 뜻하는 단어 ‘nest’를 사용했습니다.)를 틀더라도, 거기에서 끌어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독수리는 예리한 시력과 하늘을 나는 힘으로 자부심 또는 제왕의 상징이 되곤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는 독수리를 황제의 상징으로 삼았지요.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대에도 독수리를 나라의 상징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스포츠 팀도 그렇습니다. 매력적인 동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에서도 독수리를 자주 언급합니다. 모든 구절을 다 찾지 않아도 상식만으로도 독수리의 위엄을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찬송가로도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1) 하여간, 에돔 족속은 높은 산 바위틈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건방짐은 하늘을 찌릅니다. 하늘을 찌르다 못해 별 사이에 둥지를 틀겠다고 합니다. 북두칠성, 오리온, 카시오페아 등등… 달에 가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별 사이에 둥지를 튼다고 호언합니다. 물론 과장법이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에돔의 교만이 그렇습니다. 나의 건방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도 끌어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만을 싫어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한 내용을 인용해볼까요?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